중국을 향한 트럼프의 태도 변화는 잘 짜여진 각본대로 움직였다. 미국 트럼프 대통령이 위안샤오제(정월대보름) 축하 서신을 보내자 중국 시진핑 주석이 곧바로 전화 통화를 했다. 양국 정상의 이 소통으로 트럼프가 취임 이래 의도적으로 중국을 외면했던 강경한 입장은 전환점을 맞을 것이라는 관측이다. 트럼프 대통령과 시 주석이 양국 초청에 합의해 정상회담 가능성도 제기된다.
하지만 도입부의 각본이 매끄러웠다고 앞으로 미·중 관계 전개가 ‘장밋빛’인 것은 아니다. 당장 미·중 정부가 안보 및 경제 분야 핵심 현안들을 놓고 테이블에 앉는다면 입장차를 좁히기가 쉽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다.
12일 중화권 매체들에 따르면 미·중 간에 대화 분위기가 조성됐지만 트럼프 대통령이 중국의 문제로 지목한 ▲불공정 무역 행위 ▲환율 조작 ▲남중국해 군비 확장 ▲북한 핵 해결 문제 등은 양국 대화가 쉽지 않을 전망이다.
◇'하나의 중국' 놓고 미·중 미묘한 입장차
단적으로 두 정상 통화 직후 양국은 성명 내용부터 미묘한 차이를 보였다. 당시 중국 정부는 성명을 통해 “시진핑 주석은 트럼프 대통령이 ‘하나의 중국’ 지지를 강조한데 대해 높게 평가했다”며 마치 트럼프가 먼저 ‘하나의 중국’ 지지를 언급한 것처럼 내비쳤다.
그러나 미국에 서버를 둔 둬웨이는 백악관 성명을 인용해 “시진핑 주석의 ‘하나의 중국’ 원칙 준수 요구에 트럼프 대통령이 동의했다”며 “백악관은 시 주석의 ‘요구’(The request)라는 점을 유난히 강조했다”고 보도했다. 둬웨이는 시 주석이 요구한 ‘하나의 중국’과 트럼프가 동의한 ‘하나의 중국’은 성격이 다를 수 있다고도 했다.
남중국해와 동중국해 등에서 벌이는 중국과 주변국 간 영유권 분쟁도 미·중이 넘기 힘든 산으로 꼽힌다. 이날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는 “미-일 정상회담에서 미국이 센카쿠열도(중국명 다오위다오)의 중·일 분쟁에서 일본 편에 서겠다는 입장을 확실히 밝힌 것은 중국을 굉장히 짜증스럽게 할 것”이라고 전했다.
◇경제 분야는 미·중 대화 더 난항 예상돼
트럼프의 관심이 큰 경제 분야의 미·중 대화는 더 난항이 예상된다. 특히 트럼프가 “양국 무역이 불공평하다”며 맹공을 퍼붓는 상황에서 중국은 지난 1월 미국으로부터 또 다시 213억달러 무역흑자를 올려 분위기가 심상치 않다. 중국의 1월 대미 수출은 전년대비 9% 증가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때문에 중국산 제품에 ‘45% 관세’까지는 아니라도 트럼프 정부가 독자적으로 행정명령을 통해 ‘5% 관세’를 물릴 가능성이 제기된다. 이 경우 중국이 강력한 보복 조치에 나서면 양국 관계는 다시 틀어질 수 있다.
트럼프의 ‘환율조작국’ 주장도 미·중 입장차가 극명하게 엇갈린다. 트럼프는 중국이 자국 경제에 유리한 위안화 약세를 위해 환율을 조작하고 있다고 주장하지만 중국은 이를 부인하고 있다. 미국이 중국을 환율조작국으로 지정할 가능성은 낮지만 대신 변동환율제를 도입하라고 압박할 경우 중국은 외환시장 혼란을 이유로 이를 거절할 것으로 보인다.
이런 가운데 지난 10일(현지시간) 미·일 정상회담 후 공동 기자회견에서 트럼프 대통령이 “(중국의) 위안화 약세와 관련해 공평한 운동장(경쟁의 장)에 있게 될 것이다. 많은 사람이 이해하거나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빨리 그렇게 될 것”이라고 밝혀 주목된다. 이는 조만간 중국과 무역 불균형 문제를 해소할 미국 정부 차원의 대책 마련을 암시하기 때문이다. 만약 미·중 간 사전 조율이 없고, 중국이 거세게 반발한다면 미·중 무역전쟁을 예고할 수 있다.
트럼프 경제 내각의 핵심 인물들이 하나 같이 대중 강경파라는 점도 우려스럽다. 미국 대외무역 정책을 총괄하는 무역대표부(USTR) 로버트 라이시저 대표나 국가무역위원회(NTC) 피터 나바로 위원장, 윌버 로스 상무부 장관 등은 반중국 3대 강경파로 꼽힌다.
◇미국내 '지중파', 양국관계 어떤 역할할까
하지만 일부에서는 트럼프 대통령과 시 주석 소통에 결정적 역할을 한 미국 내 지중파를 주목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들린다. 일본 니혼게이자이신문은 헨리 키신저 전 국무장관이 미·중 정상 간 소통을 위해 트럼프에게 진언을 했다고 전하기도 했다. 렉스 틸러슨 국무장관도 트럼프에게 ‘하나의 중국’ 원칙은 수용해야 한다고 설득해 시 주석과 통화를 성사시킨 것으로 알려졌다.
트럼프의 딸 이방카와 사위 제러드 쿠시너의 미·중 관계 역할론도 무시할 수 없다. 이방카는 딸 아라벨라에게 생후 18개월 때부터 중국어를 가르쳤고, 미국 언론 재벌 머독의 전 부인인 중국인 웬디 덩과 막역한 사이로 알려졌다. 이방카는 남편 쿠시너가 주미 중국대사관 추이톈카이 대사와 모종의 합의를 이룬 직후인 지난 8일 딸 아라벨라를 데리고 중국대사관 춘절 행사에 깜짝 참석하기도 했다.
전문가들은 “트럼프가 일단 취임 이래 의도적으로 보였던 중국 따돌리기에서는 탈피하려는 모습”이라며 “그렇다고 대중국 강경 입장 자체를 바꿀 수 있을지는 아직 미지수”라고 밝혔다.
한편 이날 중국 주요 관영언론은 미·일 정상회담 결과에 대해 폄하하는 입장을 내놓았다. 환추시보는 사설에서 “아베 총리가 미국에는 무릎을 꿇고 절하는모양을 취하면서 중국에는 오만한 모습을 보이는 것은 평화헌법 개정을 위한 정치적 술수”라고 전했다. 신화통신은 “미·일 양국이 동맹강화 등 성과를 거뒀다고 하지만 구체적 문제까지 다루지는 못했고, 여전히 양국이 협상에서 마찰음을 낼 가능성이 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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