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이데일리 안승찬 특파원]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인은 스스로 ‘저금리 인간’이라고 부른다. 부동산 사업가인 그는 언제나 낮은 금리와 돈이 넘쳐나는 유동성 환경을 좋아했다.
하지만 트럼프 당선인이 예고한 적극적인 재정정책과 보호무역이 오히려 미국의 긴축정책을 앞당기는 결과를 낳았다. 금리를 둘러싼 ‘트럼프의 역설’이다.
◇ 문제의 점도표(dotplot)
14일(현지시간) 재닛 옐런 미국 연방준비제도(Fed) 의장은 기준금리 인상 발표 이후 가진 기자회견에서 “내년 금리 인상 움직임은 매우 완만할 것”이라고 말했지만, 사람들은 옐런 의장을 발언을 주목하지 않았다. 모두 점도표만 쳐다봤다.
점도표는 미국의 통화정책을 결정하는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에 참석하는 17명의 위원들이 자신이 생각하는 적정 기준금리에 점을 찍는 분포도다. 연준 위원들이 생각을 담은 일종의 설문조사와 같다. 점도표는 연준의 금리 인상 시나리오를 고스란히 보여준다.
이날 공개한 연준의 점도표에 따르면 가장 많은 위원들이 내년 적정금리로 1.25%~1.5%를 제시했다. 기준금리를 내년에만 세차례 올리겠다는 뜻이다. 지난 9월 점도표에서는 두차례 인상을 가정한 1%~1.25%가 적정금리였다. 3개월만에 미국의 기준금리 인상의 속도가 더 빨라져야 한다고 생각하는 연준 위원들이 많아졌다는 얘기다.
미국 연방준비제도(Fed) 위원들이 생각하는 적정 기준금리를 점으로 찍어 보여주는 점도표
◇ 예상치 못한 트럼프 당선..연준 긴축에 ‘기름’
연준의 금리 인상 계획이 빨라진 이유는 트럼프 당선이라는 환경의 변화 때문이다.
트럼프 당선인은 적극적인 재정정책과 보호무역을 펴겠다고 예고한 상태다.프럼프 당선인은 재정정책과 보호무역을 통해 미국의 성장률을 끌어올리고 일자리를 더 만들겠다는 계획이다.
하지만 정부 자금을 쏟아붓는 재정정책을 펴고 관세율이 높이면 미국의 물가가 오르는 효과를 낳는다.
골드만삭스의 분석에 따르면 미국이 2년간 국내총생산(GDP)의 1%만 재정지출을 늘려도 근원물가상승률(에너지와 식품 등 변동성이 큰 부분을 제외한 물가상승률)이 6년간 0.1~0.2%포인트씩 올라간다.
트럼프 당선인은 1조달러 규모의 인프라 투자를 공언했다. 미국의 GDP가 16조8000억달러(2013년 기준) 규모라는 점을 고려하면 GDP의 6%가량의 재정지출을 늘리겠다는 공약이다. 물가 상승의 속도가 빨라질 수밖에 없다.
관세 역시 마찬가지다. 관세율이 오르면 그만큼 수입물가가 상승한다. 관세율이 10% 인상되면 근원물가상승률이 누적으로 0.6%포인트 가량 오른다는 분석이 나온다.
트럼프의 경제정책은 미국의 물가상승률을 더욱 가파르게 만든다. 여기다 산유국들의 감산 합의로 물가에 영향이 큰 국제 유가도 뚜렷한 오름세다.
연준은 갑자기 트럼프의 경제정책이라는 변수를 예상하지 못했다. 이날 옐런 의장은 이미 미국의 실업률이 4.6%까지 떨어졌다는 점을 언급하면서 “지금 상황에서 고용을 늘리는 재정정책은 필요하지 않다”고 비판했다.
결국 연준은 예상치 못했던 트럼프의 경제정책이 미국의 과도한 물가 상승을 가져올 수 있다고 걱정하는 셈이다. 이는 연준의 긴축적인 통화정책에 기름을 부었다.
옐런 의장은 “(트럼프의 경제정책이) 내년도 금리 인상 전망을 변화시킨 변수 중 하나였다”면서 “일부 위원들이 (트럼프 당선인의) 재정정책 가능성을 다소 반영했다”고 설명했다.
◇ 또 다른 변수 ‘强달러’
하지만 상황이 변화할 가능성도 있다. 금리 인상에 대한 기대감은 달러 가치를 끌어올리기 때문이다.
달러 값이 오르면 그만큼 수입 물가가 낮아지는 효과가 생긴다. 달러 강세는 물가 상승을 제한한다. 또 달러 강세가 미국의 수출기업에겐 직격탄이다. 달러 강세가 미국 기업의 실적을 갉아먹고 무역적자를 더 키우는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
국제 유가의 상승세도 제한적일 수 있다. 유가가 오르면 미국의 셰일오일 등 공급이 다시 늘어나 유가 하락 요인으로 작용한다. 산유국의 감산 이행 여부도 여전히 불투명하다.
뉴욕 맨해튼의 한 시장 관계자는 “달러 강세에 따른 부작용과 미국의 노동인구의 둔화 등 구조적인 요인을 고려하면 미국의 금리 인상의 속도가 무작정 빨라진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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