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니투데이 주명호 기자] [포르투갈은 모자라고 독일은 넘치고…정치적 제약으로 효과적 추진 어려워] 유럽중앙은행(ECB)이 또다시 추가부양 카드를 펼쳤다. 월별 자산매입 규모는 처음 수준으로 돌아갔지만 대신 기한을 9개월 늘렸다.
하지만 문제는 부양 확대가 아니다. 부양 효과가 필요한 국가에 적절히 배분되고 있지 않다는 점이다. 유럽 최대 경제국인 독일의 국채는 기준 이상으로 사들인 반면 정작 경기침체, 실업난에 허덕이는 포르투갈의 국채 매입량은 ECB 지분에 비해 크게 모자랐다.
이번 추가 부양조치 역시 이런 불균형을 전혀 해소하지 못할 것으로 보인다. 그렇다고 아직은 부양을 축소하거나 줄일 단계도 아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ECB가 딜레마에 빠졌다고 19일(현지시간) 진단했다.
ECB의 양적완화(QE) 행보는 작년 1월부터 시작된다. 당시 ECB는 당해 3월부터 올해 9월까지 매월 600억유로의 자산매입을 실시한다고 발표했다. 같은 해 12월에는 매입기한을 내년 3월까지 6개월 연장했으며 올해 3월에는 월매입액을 800억유로로 늘리고 매입대상에 회사채를 포함시켰다. 이달 통화회의에서는 월별 매입규모를 다시 600억유로로 낮췄지만 내년 12월까지 9개월 더 실시하기로 결정했다.
자산매입 규모는 계속해서 늘어났지만 문제는 각국이 받는 실제적 부양 효과다. 각국 중앙은행은 ECB내 지분에 따라 매입량을 할당 받는다. 그런데 부양이 절실히 필요한 국가인데도 매입량이 할당량에 크게 못 미치는 상황이 나타나고 있다. ECB 자료에 따르면 지난 3월 이후 포르투갈 국채 매입량은 할당 기준보다 35억1000만유로 모자랐다. 반면 독일은 기준보다 80억1000만유로어치 더 사들였다. 부양에도 부익부빈익빈이 발생한 셈이다.
WSJ는 ECB가 정한 자산매입 규정이 이 같은 역효과를 발생시킨다고 설명했다. ECB는 자산매입을 시작하면서 우선 각국 국채매입량이 전체 발행의 3분의 1을 넘기지 않도록 제한했다. 또 ECB 예치금리(현행 -0.4%)보다 수익률이 낮은 채권은 매입대상에서 제외했다. 매입대상 채권의 급격한 소진을 막기 위해서다.
그런데 포르투갈의 경우 이미 2010년에서 2012년 사이 구제금융 프로그램을 통해 ECB가 국채매입을 실시한 바 있다. 이 때문에 자산매입 규모를 늘려도 포르투갈 국채 매입을 충분히 확대할 수 없는 것이다. 제퍼리스그룹의 마르첼 알렉산드로비치 연구원은 "중앙은행의 정책이 벽에 부딪히고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며 "포르투갈, 아일랜드가 특히 심하다"고 말했다.
트레이드웹에 따르면 포르투갈의 10년물 국채수익률은 약 3.8%로 그리스를 제외하면 유럽에서 가장 높다. 그만큼 실업난 등 경제 우려가 높다는 의미다. 반면 완전고용이 이뤄지고 있는 독일의 10년물 국채수익률은 0.3% 수준에 그친다.
이달 새롭게 내놓은 조치 역시 이 같은 우려 해결에는 전혀 도움을 주지 않을 것이란 관측이다. ECB는 이달 회의에서 예치금리보다 낮은 수익률의 국채매입 금지 규정을 폐지한다고 발표했다. WSJ는 이로 인해 독일과 네덜란드의 국채 매입이 더 늘어날 것이라고 전했다. 국채수익률이 현 예치금리보다 낮은 국가는 이들 밖에 없기 때문이다. 독일의 경우 만기 5년물 이하 모든 국채수익률은 예치금리를 하회하고 있다.
정작 포르투갈, 아일랜드 등의 국채매입을 막는 장애물에는 아무런 조치도 취하지 않았다. 이에 마리오 드라기 ECB 총재는 "이런 변화를 어렵게 하는 법적, 기관적 제약에 대한 인식이 늘고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HSBC홀딩스의 버트 로렌코 유럽 및 중동, 아시아(EMEA)부문 외환전략 대표는 "ECB의 발표가 (유럽)주변국에 좋다고는 생각치 않는다"고 말했다.
WSJ는 유로존내 정치적 문제도 주변국 중심의 부양책 추진을 어렵게 만든다고 봤다. 독일 및 EU 의회의 반발에 부딪힐 수 있다는 것이다. 독일 경제전문가들은 ECB의 부양행보가 결국 남유럽국가에 대한 무분별한 구제금융을 숨기는 결과를 초래한다고 종종 목소리를 높여왔다. 프라임파트너스의 프랑수아 사바리 최고투자책임자(CIO)는 "정치적 선택에 따라 독일은 여전히 주변국 규제 완화보다 자국 국채 매입 확대를 바란다"고 지적했다.
이런 제약이 ECB의 추가부양 능력을 손상시킬 수 있다는 우려감도 점차 커지고 있다. 뱅크오브아메리카메릴린치(BofAML)는 지난주 내놓은 보고서에서 "정치적 제약이 이제는 우세해지는 모습"이라며 "다른 큰 충격이 발생하게 되면 ECB의 탄약도 바닥날 수 있다"고 분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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