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은행(BOJ)이 물가상승률을 높이기 위해 채권매입을 지속할 게 아니라 임금을 올리는 데 주력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왔다.
1982-1999년 BOJ 수석 이코노미스트를 지낸 와타나베 츠토무 일본 도쿄대 교수는 17일 블룸버그와 회견에서 BOJ가 소비자물가를 높이는 데 이미 실패한 채권매입을 중단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대신 BOJ가 일본 정부와 함께 임금 목표치에 집중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와타나베 교수가 말한 채권매입은 구로다 하루히코 BOJ 총재가 취임 직후인 2013년 4월부터 시작한 2차원 완화를 말한다. 2차원 완화는 양적, 질적 완화라고도 한다. 일본 국채 중심으로 다양한 자산을 사실상 무제한 매입한다는 의미다. 매입 규모는 연간 60조~70조엔에서 2014년 10월에 80조엔으로 늘어났다.
2차원 완화는 물가상승률을 끌어올리는 게 목표다. 아베 신조 일본 총리의 취임 공약인 '디플레이션 탈출'을 위해서다.
그러나 구로다 총재가 2년 안에 달성하겠다고 공언한 물가안정 목표는 아직 저 멀리에 있다. 일본의 물가지표는 구로다 총재가 처음 '2년 내 물가상승률 2% 달성'을 목표로 내건 2013년 4월 이전 수준으로 회귀했다. 그 사이 BOJ는 물가안정목표 달성 예상시기를 거듭 연기했다. 지난 4월엔 2017년 4-9월에서 2017년 4월-2018년 3월로 미뤘다. 와타나베 교수의 말대로 BOJ의 채권매입 정책이 실패한 셈이다.
그는 "지난 3년간의 실패가 준 교훈은 시중에 통화공급만 늘려서는 물가 추세를 깰 수 없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와타나베 교수는 인플레이션을 자극하기 위한 대안으로 임금인상을 제시했다. 정부가 나서 최저임금을 올리고 공무원 임금과 공무서비스 비용을 끌어올려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일본 정부가 공무원 임금을 높이면 기대인플레이션이 높아져 민간기업들의 임금인상을 자극할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와타나베 교수는 BOJ도 더 이상 채권매입 규모를 늘리지 말고 현상을 유지해야 한다고 했다. BOJ의 채권 매입 기대감에 일본 국채 매입에 열을 올린 시장이 흔들릴 수 있지만 BOJ가 직접적인 금리 정책을 통해 후폭풍을 최소화할 수 있다는 지적이다. 그는 BOJ가 연간 물가상승률 2%, 생산성증가율 2%와 함께 임금상승률 4% 달성을 정책목표로 삼아야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일본의 임금상승률은 지난해(올 3월 끝난 회계연도 기준) 0.2% 올랐다. 블룸버그는 적어도 2003년 이후 일본의 연간 임금상승률이 0.7%를 웃돈 적이 없다고 지적했다.
국제통화기금(IMF)도 최근 일본에 임금인상을 통한 경기부양을 권고했다. 리처드 닉슨, 제럴드 포드, 지미 카터 등 미국의 전직 대통령들도 소득 증대를 경기부양 수단으로 삼은 바 있다는 설명이다.
와타나베 교수는 또 BOJ의 국채 매입으로 일본 정부의 재정규율이 느슨해졌다며 이는 결국 금융위기를 야기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BOJ가 대규모 채권매입 정책 아래 올 초 마이너스 기준금리를 도입하면서 10년 만기 일본 국채 금리는 마이너스로 떨어진 지 오래다. 일본 정부가 돈을 빌리면서 오히려 수수료를 받게 된 셈이다. GDP(국내총생산) 대비 부채 비율이 세계 최고 수준인 일본 정부가 더 쉽게 빚을 불릴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됐다는 얘기다.
일본 제1야당 민진당도 같은 맥락에서 BOJ가 금융시장에 해를 주는 마이너스 금리 정책을 끝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한편 BOJ의 부양책은 엔화를 약세로 이끌고 증시를 상승시키는 등 순기능도 있었다. 엔화는 올해 들어 강세를 띠고 있지만 BOJ의 부양책이 시행된 이전과 비교하면 7% 정도 약세를 나타낸다. 도쿄 증시에서 토픽스지수는 이 기간 동안 28.5% 상승했다.
와타나베 교수는 "전례없는 부양책이 엔화 약세와 증시 상승 측면에서 효과를 발휘했지만 실물 경제로 퍼지지 못했다"며 "BOJ는 오는 9월 금융정책결정회의에서 부양책의 효과를 재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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