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로화 강세 기조가 유로존(유로화 사용 19개국) 수출기업과 유럽중앙은행(ECB)을 압박하고 있다. 수출 경쟁력이 약해진 기업들이 울상인 가운데 ECB는 유로화 약세를 유도하기 위한 추가 부양에 나설 전망이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21일(현지시간) 국제 외환시장에서 유로화 강세 전망이 확산되고 있다고 보도했다.
달러 대비 유로화 값은 지난주에 1.5% 올랐다. 영국이 6월 말에 유럽연합(EU) 탈퇴(브렉시트)를 결정하면서 지난달에 1.10달러 밑으로 떨어진 달러/유로 환율이 브렉시트 결정 이후 처음으로 1.13달러대로 복귀했다.
달러/유로 환율 추이(단위: 유로당 달러)/그래프=블룸버그
전문가들 사이에선 유로화 강세 추세가 더 가팔라질 것이라는 전망이 퍼지고 있다. FT는 유로존 경제에 대한 확신보다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의 금리인상 가능성에 대한 회의론이 유로화 강세 전망을 이끌고 있다고 지적했다. FRB의 금리인상 전망이 후퇴하면 달러가 약세를 띠면서 유로화 가치를 띄어 올리게 된다.
미국 투자은행 모간스탠리는 달러/유로 환율이 연내에 1.18달러까지 오를 것으로 봤다. 스위스 UBS는 연말 상한선을 1.16달러로 예상했다.
네덜란드 라보뱅크는 FRB의 금리인상을 전제로 달러/유로 환율 3개월 전망치로 1.10달러를 제시했다. 다만 이 은행의 G10(주요 10개국) 외환전략가인 제인 폴리는 "FRB가 당장 금리를 인상하지 않을 것이라는 게 분명해지면 유로화 값이 더 오를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이처럼 FRB의 금리정책은 유로화 향방에 결정적 변수가 된다. 시장에선 FRB가 다음달에 금리인상에 나설 가능성이 여전히 낮다고 보지만 정확한 향방에 대해서는 아무도 확신하지 못하는 눈치다. FRB에서는 최근 주요 인사 몇몇이 금리에 대해 입을 열었지만 오히려 혼선만 일으켰다. 이에 따라 시장에서는 재닛 옐런 FRB 의장이 오는 26일 잭슨홀미팅에서 할 연설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잭슨홀미팅은 미국 캔자스시티 연방준비은행이 와이오밍주 잭슨홀에서 매년 여름에 여는 경제정책 심포지엄이다. 세계 주요국 중앙은행 수장과 경제학자들이 두루 모이는 올해 행사는 오는 25-27일에 열린다. 올해 주제는 '미래를 위한 탄력적인 통화정책 틀 설계'(Designing Resilient Monetary Policy Frameworks for the Future)다.
UBS는 최근 돋보인 유로화 강세가 투자자들을 놀라게 했다고 지적했다. 브렉시트를 둘러싼 불확실성, 미국 고용지표 개선, 미국과 유로존의 금리차 확대 등 여러 악재를 이겨 낸 결과라는 이유에서다. UBS는 유로존이 최근 5년 만에 처음으로 미국을 성장률로 앞지른 게 유로화 강세의 한 배경이 됐다고 분석했다.
문제는 유로화 강세가 모처럼 나타난 유로존 성장세에 역풍을 일으킬 수 있다는 점이다. 유로화 값이 뛰면 유로존 기업들의 수출 경쟁력이 약해진다. 수출품 가격이 오르기 때문이다. 물가상승세를 자극하려는 ECB의 노력이 물거품이 될 수도 있다. 이런 우려로 유럽 증시는 최근 유로화 강세 속에 부진한 모습을 보였다.
전문가들은 ECB가 추가 부양에 나설 공산이 크다고 본다. 모간스탠리는 ECB가 현재 마이너스인 예금금리를 더 낮출 수 있다고 예상했다. 은행들이 ECB에 맡기는 여윳돈에 적용하는 예금금리는 현재 -0.4%다.
모간스탠리는 그러나 추가 금리인하가 제한적인 효과만 낸 채 역풍을 일으킬 것으로 전망했다. 마이너스 금리가 은행권 수익에 타격을 줘 대출 환경이 나빠지면 유로화 강세를 자극할 수 있다는 것이다.
라보뱅크의 폴리는 투자자들이 유로화 강세에 베팅하는 건 마리오 드라기 ECB 총재의 발언이 영향력을 잃고 있다는 의미라고 지적했다. 드라기 총재는 기회가 있을 때마다 추가 부양 의지를 강조했다. 폴리는 FRB의 금리인상 전망이 후퇴하면 드라기 총재가 큰 역풍(유로화 강세)을 맞게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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